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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조선

조선왕조성립 요약 1#(2/3)

테레비보는깨돌 2025. 4. 9. 16:45

조선왕조의 유교정치 이념

  • 조선왕조는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표방하였으나, 유교정치의 실현은 단순한 표방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 조선 개국 초기에는 조선경국전, 경제육전 등의 법제적 틀을 갖추었으나, 유교 국가에 필수적인 유교적인 의례와 제도를 갖출 여유가 없었다.
  • 태조 대에는 정치적 및 사회적 안정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유교정치의 기틀을 잡을 수 없었다.
  • 태종 대에도 정치적 안정과 왕권 강화에 급급하여 유교정치의 실현은 기대할 수 없었다.

유교정치의 기틀 마련

  • 유교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문물제도를 유교적인 것으로 재정비해야 하며, 이를 담당할 많은 유신이 필요하다.
  • 대명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학자적 관료가 필요하다.
  •  조선이 대명사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유교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재의 양성과 학문의 진흥이 불가결한 요건이었다.
  • 조선 개국 초에는 많은 인재들이 개국에 동참하였으나, 태종 10년(1410)에는 개국 초의 인재가 대부분 사라져 인재의 양성과 학문의 진흥이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세종대의 학문 진흥

  • 세종 2년(1420) 3월에 집현전이 설치되었으며, 이는 국가적 요구에 부응한 것이었다.
  • 세종은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뽑아 집현전을 채우고, 그들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 집현전관은 다양한 학술적 직무를 수행하였으며, 사가독서제를 통해 학문에 전념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 수많은 쟁쟁한 학자들이 양성되었고, 유교적 의례와 제도의 정리작업 및 편찬사업이 전개되었다.

정치체제의 변화

  • 유교정치를 위해서는 유교정치에 적합한 정치체제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며, 유교적 소양을 갖춘 군주와 신하의 만남이 필요하다.
  • 태종 14년 이후의 6조직계제와 권력 분산적인 국정 운영체제는 세종 18년에 의정부서사제로 바뀌었다.
  • 6조직계제에서 의정부서사제로의 변동은 왕권의 약화가 아니라 왕권을 유지하면서 유교정치에 적합한 체제로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세종 4년 이후에도 중요한 국사는 의정부와 6조에서 논의하여 보고하게 하였으며, 이러한 국정 운영 방법은 의정부서사제 실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세종대의 국정 운영

  • 세종대의 국정 운영은 세종이 의정부대신뿐 아니라 많은 관료들과 끊임없는 대화와 의논을 통해 이루어졌다.
  • 세종 26년 공법법을 반포하기까지 15, 6년 동안 중외의 관료와 많은 농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것은 세종대 정치의 중요한 한 면이다.
  • 이러한 국정 운영은 세종대의 유교정치 수준을 반영하며, 그 바탕 위에서 유교적 민본정치가 펼쳐지게 되었다.
  •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정치적 참여가 확대되었고, 이는 유교정치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문종과 단종의 정치적 변화

  • 1450년 2월 문종이 즉위하였으며, 그는 세종 20년대 후반에 세자로서 섭정 경험이 있었다.
  • 문종 즉위 후의 정치적 분위기는 세종대와 크게 변하지 않았으므로, 세종대와 같은 정치가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 1452년 단종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정치 분위기는 급변하였다.
  • 문종은 의정부대신들에게 단종을 보필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로 인해 의정부대신들이 막강한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단종의 즉위와 정치적 위기

  • 단종의 즉위로 인해 왕권은 상대적으로 허약해졌으며, 왕실의 위기로 인식된 상황이 발생하였다.
  • 단종의 숙부들은 왕권 강화와 정권 장악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게 되었다.
  • 특히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경쟁적으로 세력 확장을 꾀하였으며, 이들은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였다.
  • 황보인과 김종서 등 의정부대신들이 막강한 정치권력을 장악하자, 종친들은 왕권 회복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수양대군의 권력 장악

  • 계유정난은 왕권 강화를 명분으로 하였으나, 결국 수양대군의 정권 장악과 반대 세력 제거를 위한 것이었다.
  • 단종 원년(1453) 10월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은 정권과 병권을 독차지하였고,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였다.
  •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은 세조 왕위의 명분과 정통성에 흠이 되었고, 도덕성에도 큰 허물을 남겼다.
  • 세조 2년(1456) 6월의 사육신사건은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세조의 왕권 강화 정책

  • 세조가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 세조 재위 14년간의 정치와 정책은 왕권 강화와 떼어놓을 수 없다.
  • 세조 원년 8월 의정부서사제를 폐지하고 6조직계제를 강행하였다.
  • 중앙군의 지휘관을 종친과 공신들로 임명하여 군사권을 강화하고, 왕권에 저항하는 세력을 무자비하게 제거하였다.

성종대의 정치적 변화

  • 예종은 재위 1년 2개월 만에 승하하였으며, 예종대는 세조대에서 성종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 1469년 성종이 13세로 즉위한 이후 7년 동안은 윤대비비의 수렴청정과 원상제제가 계속되었다.
  • 원상들은 훈신세력의 핵심으로 떠올랐으며, 성종의 왕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 훈신들은 세조공신들로서 막대한 재력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세력은 왕권을 압도하였다.

사림세력의 대두와 대립

  • 성종의 신임을 받은 김종직은 그의 문인들을 정계로 이끌었고, 사림세력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대두되었다.
  • 사림세력은 주로 三司에 발령을 받았으며, 훈구대신들의 비리를 공격하였다.
  • 훈구세력과 사림세력 간의 대립이 심화되었으며, 이는 정치적 갈등을 초래하였다.
  • 성종대에는 인재 양성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편찬사업이 이루어졌다.

성종대의 문화와 정치

  • 성종대에는 집현전제도를 이은 홍문관관의 설치와 유생교육의 장려 등 인재 양성에 힘썼다.
  • 동국여지승람, 동문선, 동국통감, 오례의의, 악학궤범범 등의 큰 편찬사업이 이루어졌다.
  • 경국대전의 완성과 반포는 조선 초기의 문화와 제도의 정리사업을 완료하는 데 기여하였다.
  • 성종대에는 훈구대신들 간의 고리대행위와 뇌물 성행, 사치와 퇴폐의 풍조가 만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