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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의 일본

테레비보는깨돌 2025. 4. 18. 16:10

조선 초기의 대일 관계를 이해하려면 당시 동아시아 국제 정세를 알아야 합니다. 14세기 후반, 동북아시아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중국에서는 1368년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고, 1391년 북원이 멸망하면서 한족 중심의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비슷한 시기인 1392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으며, 일본에서는 남북조시대가 끝나고 통일되었습니다.

 

명나라는 유교 이념에 기반하여 전제 정치를 강화하고,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추구했습니다. 주원장은 조공 제도를 재확립하여 주변국에 입공을 요구했고, 고려와 지금의 베트남, 일본 등이 명나라 중심의 국제 질서에 편입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조공 제도가 가장 잘 정비되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친명 정책을 추진했으나, 명나라는 조선을 견제하려 했습니다. 한때 요동 정벌 계획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태종 때 조공 체제가 확립되면서 관계가 안정되었습니다.

 

*명나라는 왜구 문제로 일본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1399년, 아시카가 요시미츠는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 관계를 맺었고, 1403년 감합 무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일본 막부가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대명 무역을 독점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이후 감합 무역은 150여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조선의 대외 정책 우선순위는 주변국과의 우호 관계 수립이었고, 특히 왜구 문제 해결과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했습니다.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한반도와 중국 연안에서 활동한 일본 해적 집단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13~15세기에 주로 활동했던 전기 왜구로, 무역 외적인 침략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왜구의 근거지는 대마도, 이키 섬, 마쓰우라 등 일본 서부 지역의 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지방 영주들의 보호 아래 조직적으로 해적 행위를 했으며, 몰락한 무사와 영세민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왜구가 발생한 배경에는 가마쿠라 막부 말기와 남북조시대의 일본 국내 불안정과 중앙 정부의 통제력 약화가 있었습니다. 고려 역시 원 간섭기의 경제적 부담과 쇠약해진 국력으로 인해 왜구의 침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왜구의 침략은 1350년부터 본격화되었고, 특히 고려 말 우왕 때 극심하여 왜구를 피하기 위한 천도론이 제기될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