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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성립 요약 1#(3/3) 본문
한국사/조선
조선왕조성립 요약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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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9. 16:56
조선 초기 북방 경계 설정
- 조선 초기 대륙에 접해 있는 북방 경역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 세종 말년 정치, 외교, 사회가 안정되면서 압록강과 두만강이라는 자연 경계선으로 국경이 획정되었다.
- 이는 조선의 외부 세력과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내부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여진족과의 갈등
- 조선 개국 전후 압록강·두만강 연안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은 조선 정부에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주었다.
- 태조대부터 세종대에 이르는 동안 여진족에 대한 초유와 진무를 통해 4군과 6진이 설치되었다.
- 북쪽 경계를 침입하고 약탈하려는 여진족과 이를 방어하려는 조선의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 조선 정부는 북방 개척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였다.
세종의 북방 개척 노력
- 세종은 북방 개척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 김종서, 최윤덕 및 많은 군사들의 피와 땀으로 4군·6진이 설치되었다.
-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으로 설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 여진족의 침입은 계속되었고, 조선 정부의 방어 노력도 끊이지 않았다.
사민정책의 시행과 문제
- 북변으로의 사민은 태조대부터 있었으나, 세종 16년(1434)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 국가의 입장에서는 연변을 충실히 하고 국방을 위한 것이었으나, 입주자의 입장에서는 강제적 사민의 성격을 띠었다.
- 강제적 사민으로 인해 도망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었다.
- 세조 이후에도 하삼도민의 사민은 계속되었고, 북변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노력도 지속되었다.
조선의 외교정책 수립
- 조선은 국초부터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한 외교정책을 세웠다.
- 14세기 후반, 중국 대륙이 원의 지배에서 명의 지배로 바뀌면서 조선의 외교적 관심은 명과의 외교관계 수립에 집중되었다.
- 일본과의 적절한 외교관계 수립도 필요하였다.
- 만주 일대 및 압록강·두만강 남쪽에 살던 여진족에 대한 외교관계 유지도 중요하였다.
명과의 외교적 관계
- 명은 조선에 대해 사대의 예를 행할 것을 요구하였다.
- 조선은 이를 인정하면서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인 실리를 얻고자 하였다.
- 조선 개국 초에는 명과의 사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긴장과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 금은의 세공, 종계 변무, 환관·처녀의 진헌 등의 문제 해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구의 침입과 대응
- 고려말부터 심해진 왜구의 침입은 국가의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다.
- 왜구의 약탈은 그들의 물질적, 경제적 욕구에 의한 것이므로, 그들의 욕구를 회유하고 일부를 충족시켜주는 방법이 필요하였다.
- 대마도 정벌, 3개항장, 세간의 한정, 왜인의 왕래와 거류 왜인의 제한 등의 조치는 조선의 일본에 대한 교린정책을 보여준다.
- 조선은 때로는 강경하게, 때로는 회유하며 왜인의 왕래와 교역을 허락하기도 하였다.
여진족에 대한 교린책
- 조선은 여진족에 대해 교린책으로 일관하였다.
- 여진족은 조선에 대해 정치적, 외교적으로 종속관계에 있으면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이익을 취하였다.
- 조선은 여진족을 위무하고 회유하여 국경지방의 소요를 미리 막고자 하였다.